8000억 벤처펀드 등장…VC '연봉 킹'이 말하는 에이티넘의 전략 [긱스]

입력 2023-09-19 09:08   수정 2023-09-19 09:11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상장 벤처캐피털(VC)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8000억원 규모 신규 벤처펀드를 결성했습니다. 벤처투자업계 사상 최대 규모 펀드입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대형 펀드 하나에 집중하는 '원 펀드' 전략으로 유명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펀드 결성 총회가 있던 날, 대표펀드매니저를 맡은 김제욱 부사장을 만났습니다.



'8000억원'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벤처캐피털(VC)업계 새 이정표를 세웠다. 역대 최대 규모의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에이티넘성장투자조합2023' 결성 총회를 열었다. 이 펀드의 약정 총액은 8000억원이다. 2년 전 결성했던 5500억원 규모를 뛰어넘는 벤처업계 사상 가장 큰 펀드다. 회사는 2014년 업계 최초로 2000억대 펀드를 결성한 데 이어 2018년에는 3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 벤처펀드 대형화 바람을 몰고 왔다.

펀드의 핵심운용인력은 대표펀드매니저를 맡은 김제욱 부사장(사진)을 필두로 황창석 사장, 맹두진 부사장, 곽상훈 전무가 맡는다.
'B2B, 글로벌, AI'... "게임 체인저에 투자"
이날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김제욱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적극적인 팔로온(후속 투자)을 통해 스타트업을 초기부터 쭉 지원해 장기적인 성장을 돕는 게 목표"리고 말했다.

이번 펀드에는 이전에 참여했던 기존 출자자(LP)들이 다시 한 번 대거 지갑을 열었다. 1600억원을 출자한 산업은행을 비롯해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과학기술인공제회, 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했다. 신규 LP로 기업은행을 비롯한 은행권 금융기관들도 참여했다. 김 부사장은 "전체 약정액의 85~90%가 기존 출자자"라며 "어려운 시기에도 기존 LP들이 신뢰를 보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펀드의 주요 투자 분야는 서비스·플랫폼(40%), 바이오·헬스케어(20%), 딥테크(30%), 콘텐츠·지식재산권(IP)(10%) 등이다. 목표 내부수익률(IRR)은 15%다. 벤처펀드 전체 상위 20% 수준의 수익률을 목표치로 내세웠다.

김 부사장은 특정 분야보다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그는 기업 간 거래(B2B), 글로벌, 인공지능(AI) 등을 주요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는 "B2B 시장이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정적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스타트업을 발굴할 것"이라며 "그 중에서도 AI를 활용하는 회사들이 유망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은 그러면서 '게임 체인저' 스타트업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 산업의 규칙과 방식을 재정의하는 회사가 게임 체인저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포트폴리오 회사인 클로버추얼패션은 패션업계를 재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클로버추얼패션은 3차원(3D) 의상 제작 프로그램을 내놨다. 가상 모델에게 옷을 미리 입혀볼 수도 있다. 에이티넘은 2014년 이 회사에 투자했다. 장외 시장에서 최근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8000억원에 육박하는데, 첫 투자 때와 비교하면 30배 이상 불어났다.

AI 스타트업 마크비전 역시 김 부사장이 주목한 게임 체인저다. 이 회사는 그동안 수동으로 이뤄졌던 위조 상품 모니터링을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자동화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원 펀드' 전략... 초기부터 후속투자 강조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전통적으로 '원 펀드' 전략을 구사해 왔다. 투자 재원이 소진될 때까지 하나의 대형 펀드에 투자 역량을 집중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펀드의 규모가 크면 초기 기업이 성장한 후 후속 투자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하다. 이번 펀드에서도 1600억원(20%)가량이 시리즈A 안팎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될 예정인데, 이 같은 전략을 통해 한 펀드 안에서 시리즈B, C 등으로 후속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김 부사장은 "우리를 찾는 스타트업들에 '사업만 잘하면 후속 투자는 걱정없다'는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게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에이티넘이 지속적인 팔로온을 통해 성장시킨 대표적인 포트폴리오 회사는 전자책 플랫폼 리디가 꼽힌다. 회사는 리디에 2012년 말부터 3개 펀드를 통해 총 8차례, 620억원을 투자했다. 그 사이 리디는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됐다. 투자 멀티플(배수)은 530%에 달한다. 또 2006년부터 2021년까지 7차례 투자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2013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해 시가총액 1조원대의 회사로 성장했다. 김 부사장은 "기업가치 5000억원이 넘는 포트폴리오 회사들은 대부분 평균 2~3차례 이상씩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또 운용인력이 다른 펀드에 분산되지 않아 한 펀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원 펀드 전략의 경쟁력이다. 김 부사장은 "18명의 심사역들이 한 펀드에만 집중한다"며 "펀드 안에서 특정 분야가 편중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동남아, 미국 등 해외투자 나선다
이번 펀드는 해외 투자 비중이 최대 20%로 배정됐다. 에이티넘은 원래 해외 투자에 적극적인 VC는 아니었다. 과거 펀드의 해외 투자 비중은 10%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싱가포르에 지사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해외 투자 보폭을 늘려가는 모양새다.

싱가포르를 필두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B2C 분야, 미국에서는 바이오와 B2B 분야, 이스라엘에서는 AI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또 B2B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이 큰 일본에도 주목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동남아는 몇 년 전의 한국과 같은데, 버티컬 분야에서 B2C 강자가 막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며 "특히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 지역의 B2C 회사에 주목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 역시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산업계의 디지털전환(DX)이 많이 이뤄졌고, SaaS 시장은 한국보다 10배 이상 크다"며 "일본 VC와 LP 네트워크를 통해 출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최근 그로스파트너본부를 신설하고 이 조직에 인력을 대거 수혈했다. 수장인 네이버 출신 박상욱 전무를 중심으로 SK하이닉스 출신 미국 변호사 박선영 상무, 컬리 출신 정보영 HR 매니저, 퓨처플레이 출신 구주연 PR 매니저로 조직이 꾸려졌다. 해외 IR을 담당할 인력도 모집하고 있다.

그로스파트너본부를 키우는 건 포트폴리오 회사를 더욱 '밀착 지원'하기 위해서다. 펀드가 커지면서 기업 당 투자액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투자를 리드하거나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심사역들만이 포트폴리오 사후 관리를 도맡기 어려워졌다.

이 조직이 출범한 이후 회사는 '에이티넘 SaaS데이’, ‘에이티넘 콘텐츠데이’, ‘에이티넘 커머스데이’ 같은 포트폴리오 회사 간 네트워킹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액셀러레이터가 아닌 대형 VC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행사다. 김 부사장은 "스타트업들에 투자자가 '밀착 관리' 해준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한편 대형 펀드를 통해 확보한 관리 보수를 내부 조직에 투자해 선순환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빙하기, 눈을 낮춰라"

회사는 올해 1000억원 안팎의 투자를 집행했다. 2000억원 이상 투자했던 평년에 비하면 낮은 액수다. 다만 성과는 있다. 지난해 상장한 오픈엣지테크놀로지의 투자금 회수에 성공했고, 상장에 나선 자비스앤빌런즈(삼쩜삼)의 구주도 장외에서 매각에 나섰다. 우주 스타트업 '1호' 상장에 나선 컨텍도 회수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펀드가 만들어진 내년엔 활발한 투자를 이어나가겠다는 목표다.

김 부사장은 투자 '빙하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투자 잣대를 조금 더 엄격하게 들이밀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플랫폼 회사는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사업모델(BM)을 검증하는 데 더 공을 들이고,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질 잠재력이 있는 회사 위주로 투자할 예정"이라며 "이미 시장이 포화된 B2C보다는 B2B 플랫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투자 유치를 원하는 창업가에게는 '눈을 낮추라'고 조언했다. 기업가치 등 조건을 파격적으로 낮추더라도 현금을 확보해 생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활황기에 인력을 대폭 늘렸던 회사들은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여러 사업부를 가진 회사들은 일부를 정리해 사업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향후 인수합병(M&A)이 보다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현금을 많이 보유한 대형 스타트업이 동종업계 다른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무신사나 토스, 직방 등 대형 선배 스타트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들의 좋은 인력을 인수(애퀴하이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타트업 문화를 잘 이해하는 스타트업일수록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한 덕분"이라고 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가지 더

김제욱 부사장은 누구?

김제욱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서울대에서 지구환경과학을 전공하고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거쳤다. 대우정보시스템 기술연구소,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을 거쳐 2010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 합류했다.

김 부사장은 VC업계 '연봉 킹'으로 통한다. 지난해 인센티브를 포함해 연봉 283억원을 챙기며 조수용·여민수 카카오 전 공동대표에 이어 전체 산업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보수를 받았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44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김 부사장이 업계 '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건 그의 투자 안목 덕분이다. 그는 2016년 '떡잎' 시절의 두나무를 초기에 알아보고 투자를 단행했다. 이 때 두나무의 기업가치는 500억원가량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100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또 리디나 직방 같은 유니콘에도 일찌감치 투자금을 넣었다. 클로버추얼패션과 에코마케팅 등도 초기에 알아본 인물이다. 그는 이번 펀드를 통해 대표펀드매니저 데뷔에 나선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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